당신의 수저는 무슨 색입니까?

TV를 돌리다가 거인의 어깨라는 프로를 보게 됐습니다. 

알쓸신잡2 뉴 페이스 장동선 뇌과학자의 강연이었는데요.

마음을 움직이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수저의 색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사회가 불평등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바꿀 수 없다고 체념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들 뿐입니다. 

무슨 색이 보이세요? 실제로 이 사과를 보여주고 사람들의 뇌를 스캔한 결과 빨간색을 인지하는 후두엽 부위가 활성화 되었다고 합니다. 경험이 쌓여서 뇌의 믿음이 된다고 해요. 뇌가 믿고 있는 것들과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사실이기 보다는 경험에 의한 것이라는 거죠.

뇌과학은 너무 신기한것 같습니다. 오른쪽 두뇌로 그림그리기 책에서도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을 그리지 못하고, 머리로 알고있는 모습을 그리기 때문에 잘 그리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화가들은 사실적으로 본 것을 그리는 반면 우리는 경험에 의해 알고 있는 것을 그리기 때문에 잘 그리지 못는 것입니다.

짧은 기간 오른쪽 두뇌를 사용하는 법만 익히고도 많은 사람들의 그림 실력이 놀랍게 발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결국 경험이 쌓여서 믿음이 된다는 것은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기도 하니까요.

두 수컷 하마가 암컷을 두고 치열한 결투를 펼치는 사진입니다.  전 둘이 사랑하는 건가 오해 했어요. 하마들은 입을 벌려서 싸운다고 합니다. 결국 빅 마우스가 승리한다고 하네요.  누가 힘이 쎄고 이길 능력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이미 하마의 뇌는 입이 작으면 졌다고 인식하고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붙어 보지도 않고 결정된다고 하니 슬프기도 합니다.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우리 사람도 실제 모습을 모르면서 판단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 사진을 보고 누가 보스같냐고 묻는 장동선 박사...

대부분 왼쪽이 보스라고 생각할텐데, 부부같다는 대답이 나옵니다.

정말 경험을 통해서 뇌가 인식하는 것이 맞나 봅니다.

조금은 씁쓸한 주제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두 아이의 삶의 시작점은 같을까? 어느아이의 지능이 더 높을까? 라는 질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극명하게 보이지만 아이들의 미래와 능력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믿는다는 장동선 과학자... 

그러나 가난하고 못먹는 나라의 아이들이 뇌 크기가 다르다는 연구가 있다고 합니다.

기억을 관장하는 뇌 부위인 해마가 부자 나라의 아이들이 더 컸다고 하는 연구결과입니다.

부의 효과라는 능력도 부유한 아이들이 더 높았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합니다. 장동선 박사는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는 아니라고 이런 부분을 설명합니다.

경험도 적고 어려운 환경에서 생각의 틀을 깨고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마는 본인이 이길 수도 있는데 입 크기 때문에 포기하고 말잖아요. 그러나 입이 작아도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도 찾아보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제 친구는 하마가 합리적이라고 칭찬을 하더라고요. 피를 흘리고 싸우지 않는 점이 좋다고 말입니다. 입이 큰 놈이 이기는건 합리적이지 않지만, 그 생각의 틀을 깨면 피를 흘리고 다치는 하마가 생길지도 몰라요. 또 혼자 입 크기로 정하는 건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면 왕따가 될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피를 흘리지 않지만,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사회가 돌아간다면, 그것이 평화일까요? 당연하게 고정된 생각이고 그 틀을 깨기 어려워서 소중한 것을 뺏기고 얻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암컷 하마의 의견을 존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뇌가 계급을 결정한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심리하자 필립 짐바르도 박사가 랜덤하게 선택된 사람들을 그냥 교도관과 죄수로 나누어서 역할 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냥 그들이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했지만, 교도관 그룹은 그들을 억압하고 학대했다고 합니다. 죄수그룹은 폭동을 일으키거나 다른 모습을 보였고 말입니다.

다른 실험에서는 그냥 사람들에게 돈이 있고 권력이 있다고 암시를 주는 것 만으로도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요. 처한 상황과 사회적 열할에 따라서 우리의 태도는 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들의 억울한 사연에 분노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파렴치한 사건이라는 인식 때문인가 봅니다.

내가 권력자에게 억울한 일을 당할 일 없는 권력자라면 화가 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예전에 저희 국어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전 가끔 기억이 나는데요. 한 지도자를 평가할 때 누군가 내 이웃이 억울함에 피눈물을 흘린다면 그 지도자는 나쁜 사람이라고 하셨죠.

가끔 더 안타까운 것은 약자인 사람들 조차도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지도자들의 착취와 비도덕성에 무감하며, 편을 들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뇌의 경험을 바꾼다

예로 플라세보 효과를 듭니다. 플라세보효과는 의학 성분이 없는 약이라도 환자의 믿음으로 실제 치료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실제로 심장약을 먹고 자살하려고 했던 환자가 설탕약을 먹고 심장마비로 사망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실제로 우리의 경험과 선택을 바꿔버린다고 합니다.

아기 코끼리가 묶인 줄 때문에 발버퉁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가 없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어른 코끼리로 성장하면 툭 치면 끊을 수 있는 환경에서도 묶여 있다고 생각하고, 현실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를 가두는 것은 내 속의 믿음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뇌의 영역은 고정형 마인드 세트와 성장형 마인드 세트로 나눕니다. 성장형 태도를 가진 사람이 무조건 성공한다고 합니다. 뇌의 한계를 두지 않고 클 수 있다고 생각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죠. 내가 나를 규정하고 가두는 순간 그 감옥은 생기는 거라고 장동선 과학자는 말합니다.  

갑과 을이라는 것도 뇌안에서는 그냥 정해놓은 틀이랍니다. 우리는 법적으로 계급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계급이 머리 속에 있다는 것은 그런 제도를 머리속에 만들어 놨다는 것입니다. 진중권 교수는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는 사회의 벽에서 좌절되면서 변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믿음을 바꾼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들을 보면 백인이고 남자고 소득이 높았다고 하는데요. 이런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도 사회적 지위와 연결되어 있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장동선 박사는 결과론적으로 접근하면 그렇게 보인다고 답합니다. 그렇지만 원인을 보면 개인의 안에서도 가능한 일이라는 의견을 말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사회적으로 고정된 사회적 계급과 갑과 을의 관계는 나혼자 생각의 틀을 바꾼다고 쉽게 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입 작은 하마가 을인 것처럼 말이죠. 피를 흘리며 싸우거나 아니면 전체 회의로 방법을 바꿔야 하는데, 그 전에 입 큰 하마들한테 맞아죽지 않을까 싶어요.

심지어 입 작은 하마 중에는 입 크니까 암컷을 쟁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면서 편을 드는 하마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렇게 큰 사회적 틀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내 안의 작은 생각의 틀부터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부터라도 잘못된 믿음을 바꾸고 성장형 마인드로 바꾸는 연습을 해야 겠습니다. 

그래서 제 블로그 이름이 위대한 상상이거든요. 쑤린의 저서 어떻게 인생을 살 건이가란 책에는 이런말이 나옵니다. 

자신을 실패자라고 생각하면 자꾸만 실패하게 되지만,

자신을 성공자라고 생각하면 끝없는 성공을 불러오게 된다.

위대한 인생은 우리의 상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지 정하고 구체적으로 자기암시를 하면

상상을 현실화할 의지 또는 동기가 생겨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또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 쑤린의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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